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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원내대표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더불어민주당의 법사위원장 등 6개 상임위원장 선출 강행을 이유로 미래통합당이 등원을 거부하면서 파행을 겪고 있는 국회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19일 여야에 원 구성 합의를 촉구하며 예정했던 본회의를 전격 취소했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 협상의 시간을 준 현명한 결정이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치킨 게임 식의 대치를 멈추고, 신속한 국회 정상화를 위해 한발씩 물러서길 바란다.


민주당은 국가 비상 상황에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통합당의 국회 복귀를 거듭 압박했다. 그러나 위기로 치닫는 남북관계, 코로나19 재확산 조짐, 민생-경제의 어려움 등을 고려할 때 압박만이 해법일 수는 없다. 오히려 제1 야당을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관계 해법 마련과 새 통일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3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6/17 부동산 대책 후속 입법 등을 위해 어느 때보다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다. 최소한 민주당은 스스로 공약한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 등 법사위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과 입법 일정을 분명히 제시해, 법사위 장악에 대한 통합당의 의구심을 해소하길 바란다.


통합당은 더는 국회를 볼모로 삼아선 안 된다. 통합당 외교안보특위 위원장인 박진 의원은 당면한 남북, 외교관계를 포함,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고 여당에 제안했다. 그만큼 현재 상황을 비상하게 본 것이다. 하지만 국회를 방치한 채 외교-안보 문제를 논의한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당장 정보위와 외교통일위 등 관련 상임위라도 정상 가동해야 마땅하다. 우리 정치사에서 유명정치인들의 부침(浮沈)이 심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잘 나가다가도 정치적 타격을 받아 정치현장을 떠나게 되고, 또 잊어질 만하면 예상을 깨고 화려하게 등장해 권좌에 올랐던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묻혔지만 3김이다. 1970년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를 맡았던 김영삼 원내사령탑이 1971년 대선을 앞두고 40대기수론을 제창하면서 출마 선언했고, 이어 김대중 의원의 출마 선언과 이철승 의원의 출마 선언이 연달아 이어졌던 것이다. 당시 신민당 대선 후보는 유진산 총재계인 김영삼 원내총무가 유력했다. 709월 열린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유 총재는 김영삼 의원을 후보로 지명했고, 1차 투표에서 대의원 885표 중 421표를 얻어 상당한 표 차이로 최다득표자가 되었으나, 결선투표에서 이철승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판세는 역전돼 김대중 의원이 과반이 넘는 358표로 71년 대선 후보로 지명됐던 것이다.


그 이후 김영삼 의원은 적지 않은 세월을 힘들게 보냈고 14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개인적 고난과 정치적 부침이 매우 심했음은 정치사에서 널리 알려진 대목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71년 대통령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와 박정희 대통령과 겨뤘으나 95만표 차이로 박정희 아성을 넘지 못했다. 낙선의 패배를 맛본 후 한동안 정치와 단절하고 해외에 나가있던 19738, 일본 도쿄에서 한국정보기관 요원에게 납치돼 죽음 직전에 구출되기도 했다. 또 신군부세력이 권력을 잡았던 1980년에는 내란 음모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르는 등 갖은 고생 끝에 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거기에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으니 그의 정치적 부침은 인동초(忍冬草)라는 개인 별명에 걸맞기까지 하다. 3김 시대의 마지막 주자였던 김종필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 이후 지도자로 예상됐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또 나머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명성을 떨친 지도자들이 많았으나 3김보다는 무게감에서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이 워낙 출중해 늦게까지 정치계를 장악했던 면도 작용했겠지만 정치적 변곡점으로써 격랑이 심했던 7080년 한국정치에서 군부가 장악했던 점도 하나의 요소로 작용된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탄생되긴 했으나 민주주의 발전과 참다운 국민의 정부라는 평가보다는 결과적으로 나타났듯 권력이 누수된 불행한 정치의 연속이었다. 한국정치사에서 불안한 시대로 자리매김한 권력을 성숙되지 못한 정치 풍토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언가 허전한 아쉬움이 있다. 환경이 복잡하고 갖가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후진적 정치 여건 아래서는 지도자 한사람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날 주호영 원내대표의 당무 복귀를 예고하며 원 구성 문제와 관련해 종래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지면 어렵게 풀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주 원내대표의 무력감을 이해한다 해도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내놓지 않으면 복귀할 수 없다는 현실성 없는 요구를 고수하며 국회를 공전하게 하는 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법사위를 법제위와 사법위로 분리해 여야가 위원장을 번갈아 맡자는 제안도 꼼수로 보일 뿐이다. 통합당도 여당 시절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공언했던 만큼 하루빨리 국회로 돌아와 법사위 개혁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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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선거 각 정당 공약은 어디에 있는가,
미래통합당의 총선 콘셉트는 한마디로 못 삶겠으니 그냥 옛날로 가자는 식이다. 미래통합당의 미래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미래통합당이 과거 회귀형 정당으로 방향을 튼 것은 황교안 대표 등장 이후다. 황교안의 당은 안보도, 경제도 모두 수구보수 일색이다. 보수 야당이 합리적 보수로 거듭날 동력을 잃은 것이다. 김종인 영입은 이런 과거 회귀형 콘셉트의 화룡점정과도 같다. 코로나로 선거판이 흔들리자 김종인을 내세워 중도팔이-경제민주화 팔이로, 땜질처방을 한 것이다. 김종인이란 인물 자체가 화석화된 과거일 뿐이다. 또, 김종인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시대적 좌표, 시대정신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준다. 보수 야당조차 경제는 웬만큼 중도나 진보로 가야 한다는 걸 마지못해 인정한 꼴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의 또 다른 요구는 구체제 척결과 정치 쇄신이었다. 이른바 박정희 체제의 청산과 합리적 보수, 합리적 진보로의 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다당제 합의제 정치, 제왕적 대통령제 혁파 등이 그 목록에 있었다. 하지만, 수구보수의 부활, 진보 내부의 난맥상 등으로 정치 쇄신은 난망하다. 퇴행성 공약 일색인 보수 야당 문제가 심각하다. 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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