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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트롯의 인재영입과 방식을 정치권에다.

 

인재 영입이 총선의 메인 이벤트로 자리잡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두고 1996년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공천 전권을 거머쥔 김영삼와 김대중의 인재영입 대결이었다. YS는 자신의 중간평가 격이었던 1995년 지방선거에서 신한국당이 참패하자 위기감에 빠졌다. YS의 영입 1호는 민중당 출신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등 재야 운동권 인사와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진 홍준표였다.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개혁 공천 덕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사고로 민심이 흉흉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은 15대 총선에서 139석을 얻으며 제1당이 됐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자 정계 은퇴 선언을 뒤집고 정치권에 복귀한 DJ는 새정치국민회의(이후 새천년민주당)를 창당하고 인재영입에 나섰다. 정세균 쌍용그룹 상무, 대구 출신의 추미애 판사, 정동영 MBC 앵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민석, 소설가이자 방송인이었던 김한길이 합류했다. 총선에서는 패했지만 좌파이미지를 탈색하는 데는 성공했다.

 

1997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DJ는 젊은 피 수혈론을 주창하며 2000년 16대 총선에서 1980년대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인영-우상호-임종석 등 386 운동권 출신을 대거 영입했다. 같은 시기 한나라당은 김윤환, 이기택 등 43명의 현역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대규모 물갈이에 나서 남경필-오세훈-원희룡-정병국 등 젊은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반면 정당의 인재영입은 투명하지 않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당대표의 의중이 명단을 좌우한다. 영입 인사가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췄는지를 판단할 근거도 희박하다. 그들의 인생사가 감동적이라고 해서 그들이 펼쳐 갈 정치도 감동적일 것인지는 역시 미지수다.

 

정치 초년생들의 한결같은 괴변 들이다. 정국을 바라본 소회를 묻는 질문에 많은 언론에서 검찰에서 새어 나온 정보로 모든 학부모가 그 당시에 관행적으로 해온 행위들을 너무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생각인 것 같다. 비리의 백화점이라고 까지 비판받는 조국 전 장관의 서류 조작 등 일탈을 관행이라고 치부하는 데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의를 모토로 해야 할 젊은 정치인이 자신을 영입한 여당비위를 맞추기 위해 벌써부터 공정한 사고를 잃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 젊은이는 정치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 정치인부터 특권층이나 자당의 비리를 옹호하고 묻어 주려는 관행 적폐를 타파해야 한다. 국민들의 준엄한 요구를 여당은 모르는 것 같다.

 

고전 춘향전의 탐관오리 변사또가 실존인물이었다면 봉고파직 당할 때 매우 억울해 했을 것이다. 기생의 딸에게 수청 들라 한 것은 타 지역 수령들도 즐겨했던 짓이 아닌가. 얼마든지 축첩이 가능했던 시대의 관행이었다. 사또 생일날 기름진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인근 수령들과 양반들을 불러 잔치 한 것도 관행이었다. 그런데 어사는 이를 백성들의 피며 고혈이라고 비판한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21대 총선을 2개월여 앞두고 여야의 인재영입 경쟁이 한창이다. 민주화 이후 주요 정당들은 당의 이미지 쇄신과 외연을 확장하는 데 효과적인 인재영입을 선거 전략으로 활용해 왔다.

 

항아리 속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쟁반 위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성소리도 높구나 (淸香旨酒千人血 細切珍羞萬姓膏 燭淚落時人淚落 歌聲高處怨聲高) 춘향전에서 절정의 통쾌미는 어사 출도로 변사또를 응징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어디 변사또뿐이랴. 당시 전국 탐관오리들의 횡포는 백성들의 피를 짜고 재물을 훔치는 스킬이 허가 낸 도둑 이상이었다.

 

노비가 아전을 고발하고 아전이 사또를 고발하면 누가 벌을 받았을까. 주인을 고발한 부도덕한 자로 매도돼 오히려 고발한 자가 벌을 받았다.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지 못하게 한 것이 조선의 불문율이었다. 모든 뇌물과 부정행위는 모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눈감고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기묘사화 때 조광조(靜庵 趙光祖)는 관행을 깨뜨리고 조정을 개혁하려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당했다. 그는 먼저 반정 원로공신들을 상대로 개혁하려했다. 공신 작호가 부당하게 내려진 76명에 대해 공훈을 삭제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조광조 등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던 최고 실세 박원종 등 공신세력들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권좌에 올라 모든 국정을 다스리는 데 이(利)를 먼저 하고 있으므로 이를 개정하지 않으면 국가를 유지하기가 곤란 합니다. 하니, 중종은 처음 개혁파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점점 공신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불안함을 느끼고 갑자기 신진사류 일파를 숙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제일먼저 없앤 것이 바로 개혁의 선봉 조광조였다. 조선은 18세기에도 세계 각국의 부상에 편승하지 못하고 관행을 중시하다 망하고 말았다. 가렴주구로 민초들의 고난은 커져 갔다. 비리를 고발하고 집권층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모두 누명을 씌워 제주도나 땅 끝 마을로 귀양 보내 사회와 단절시키고 언로를 막았다.

 

실학사상과 근대화를 외쳤던 지식인들은 평생 땅을 치고 한을 안고 살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정희와 정약용이다. 다산은 궤도를 잃은 정치-잘못된 관행-사리사욕을 챙기는 탐관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뇌물에 심취했던 세도가들은 다산을 껄끄럽게 여겨 17년 동안이나 서울과 괴리시킨다. 정치인들의 자녀 입시비리 의혹을 놓고 관행이라는 사고 방식으로 정치를 시작하고 있다. 인재영입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뒷받침해줄 시스템이 미비하기에 진 전 교수의 말대로 일회용 추잉껌처럼 단물이 빨리면 유통기한이 끝나버린다.

 

세대와 성별, 진영을 넘어 온 국민을 트로트 열풍으로 몰아넣은 미스터 트롯의 인재영입과 인재육성 방식을 정치권에 도입한다면 한국정치의 판도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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